JOURNAL

H&M × MLMA SEONGSU

RETAIL IN RED

SEONGSU

/

2026

공간 관찰·해석 | 카이로스 디자인

H&M 성수 × MLMA

3층까지

올라가게 만드는 매장은

무엇이 다른가

CAR PARK → WARDROBE → STAGE

옷을 고르는 동선을

‘나를 연출하는 과정’으로 바꾼 공간

KAIROS DESIGN project visualization

여러 곳을 돌았는데,

가장 오래 남은 곳은 여기였다.

성수의 매장들을 하루 종일 걷고 나면 큰 조형물도, 거대한 스크린도 꽤 익숙해진다. 그런데 H&M 성수는 이상하게 한 장면이 아니라 ‘질서’가 기억에 남았다.

밖에서는 누군가 나를 보고 있었고, 1층에서는 금속이 공간을 휘감았다. 붉은 계단을 지나 2층에서는 천이 시선을 걸러냈고, 3층에서는 거울 앞에 내가 서게 됐다.

계단 벽의 작은 문장을 보고서야 이 건물의 구조가 읽혔다.

SCENE 1 CAR PARK

SCENE 2 WARDROBE

SCENE 3 STAGE

3개 층을 상품 카테고리로 나눈 것이 아니었다. 도착하고, 옷을 고르고, 마지막에는 무대에 서는 과정으로 나눴다.

좋은 리테일 공간은 물건을 많이 보여주는 곳이 아니라, 사람이 다음 장면으로 가고 싶게 만드는 곳인지도 모른다.

KAIROS DESIGN project visualization

FACT CHECK

H&M 성수는 2025년 10월 문을 연 3개 층의 콘셉트 스토어다. 기본 공간은 SKYnoa가 설계했고, “A Stage for one and for all”이라는 방향 아래 성수의 산업적 기억과 패션·문화 경험을 함께 엮었다. 2026년 여름에는 한국 출신의 멀티 아티스트 MLMA(Me Love Me A Lot)와 협업한 ‘I SEE YOU’ 프로젝트가 매장 전체를 다시 점유했다.


01 파사드

새로 짓기보다, 한 겹을 덧입혔다

거리와 맞닿은 1층. 
거대한 얼굴 Aye와 손이 쇼윈도 안에서 먼저 시선을 건다
거리와 맞닿은 1층. 거대한 얼굴 Aye와 손이 쇼윈도 안에서 먼저 시선을 건다

멀리서 보면 건물 상부가 흰 커튼처럼 물결친다. 처음에는 커튼월의 한 종류처럼 읽혔지만 자료를 다시 확인해 보니, 설계사는 기존 파사드의 성격을 남긴 채 상부에 ‘무대의 커튼’을 연상시키는 반투명 외피를 덧씌우는 방식으로 설명한다.

상부 외피의 하부 디테일. 
기존 외벽을 완전히 감추기보다 
가벼운 2차 외피를 덧댄 방식으로 읽힌다
상부 외피의 하부 디테일. 기존 외벽을 완전히 감추기보다 가벼운 2차 외피를 덧댄 방식으로 읽힌다

이 지점은 디자인보다 VE 관점에서 더 흥미롭다. 기존 구조와 외벽을 모두 철거하고 새 외장재로 바꾸는 대신, 남길 것은 남기고 브랜드가 필요한 표정을 2차 외피로 추가한다.

이런 방식은 철거량과 습식 공종을 줄일 여지가 있고, 무엇보다 다음 캠페인이나 브랜드 변화에 대응하기 쉽다.

정확한 공사비는 공개되지 않았으니 절감액을 단정할 수는 없지만,‘영구적인 건축’과 ‘변해야 하는 브랜드 표정’을 분리한 판단 자체가 리테일 VE에 가깝다.

매장은 오래 버텨야 하지만,

브랜드의 표정은 계속 바뀌어야 한다.

그 둘을 같은 재료로 만들 필요는 없다.


02 1층 CAR PARK

오브제가 아니라

‘시선의 레이어’를 놓는다

1층 — 노출 콘크리트와 금속 구조물, 
그리고 거리까지 한 시야에 겹친다
1층 — 노출 콘크리트와 금속 구조물, 그리고 거리까지 한 시야에 겹친다

1층에 들어서면 회색 노출 콘크리트가 먼저 배경이 된다. 그 위로 옷, 붉은 면, 거대한 얼굴, 금속 구조물이 서로 다른 깊이에 걸린다. 어느 하나도 공간을 완전히 막지 않는다.

처음에는 메비우스의 띠처럼 보였던 금속 구조물. 
실제 모티프는 성수의 산업 기억을 가져온 가드레일이다
처음에는 메비우스의 띠처럼 보였던 금속 구조물. 실제 모티프는 성수의 산업 기억을 가져온 가드레일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금속 구조물은 처음에는 메비우스의 띠처럼 보였다. 자료를 확인하니 성수의 자동차 산업 기억에서 가져온 ‘하이웨이 가드레일’이 모티프였다. 뒤뜰의 파란 자동차까지 연결하면 이유가 선명해진다.

그래서 이 구조물은 잘 작동한다. 예쁜 조형물이기 전에 장소의 기억과 연결되어 있고, 곡선 사이가 열려 있어 상품과 사람을 가리지 않으며, 여러 방향에서 사진의 전경과 배경이 된다.

큰 구조물이 공간을 채우는 것이 아니다.

앞과 뒤를 동시에 보이게 할 때,

비로소 공간에 깊이가 생긴다.

뒤뜰의 푸른 자동차 설치. 
성수의 자동차 수리·산업 기억을 장난스럽게 남겨 놓았다
뒤뜰의 푸른 자동차 설치. 성수의 자동차 수리·산업 기억을 장난스럽게 남겨 놓았다
기둥에 직접 체결된 행거 하드웨어
. 매장의 변화에 대응하기 좋은 가변형 디테일
기둥에 직접 체결된 행거 하드웨어 . 매장의 변화에 대응하기 좋은 가변형 디테일

기둥에 붙은 행거 하드웨어도 그냥 지나치기 아까웠다. 콘크리트 기둥에 금속 플레이트를 볼트 체결하고 행거 파이프를 결합해, 벽을 새로 만들지 않고도 상품 걸이 위치를 바꾸기 쉬운 시스템으로 보인다. 리테일에서 이런 디테일은 시즌마다 바뀌는 상품량과 카테고리에 대응할 때 힘을 발휘한다.

행거 높이는 체감상 일반적인 매장보다 조금 높게 느껴졌다. 정확한 치수를 재지 않았으니 수치화할 수는 없지만, 상부로 상품을 올리면 하부 시야가 정돈되고 멀리서도 상품 면이 잘 읽힌다. 다만 실제 설계에서는 고객의 눈높이뿐 아니라 손이 닿는 범위, 의류 길이, 접근성을 함께 봐야 한다. 높이는 ‘보기 좋은 값’이 아니라 판매와 사용성이 만나는 값이다.

최근 대형 매장에 큰 작품을 넣는 일이 많다. 그런데 크다고 포토존이 되는 것도, 비싸다고 공간의 상징이 되는 것도 아니다.

저라면 설치물을 검토할 때 다섯 가지를 먼저 본다.브랜드와 장소의 이야기와 맞는가, 시야를 막지 않는가, 전체 면적에서 크기가 과하지 않은가, 고객 동선을 압박하지 않는가, 그리고 이 물체가 ‘찍히는 주인공’인지 ‘상품을 돋우는 배경’인지.여기서는 그 역할이 꽤 명확하다.


03 I SEE YOU

보는 공간에서,

바라보이는 공간으로

Aye의 두 눈. 사람은 보는 사람에서, 
어느 순간 바라보이는 사람이 된다
Aye의 두 눈. 사람은 보는 사람에서, 어느 순간 바라보이는 사람이 된다

MLMA의 거대한 얼굴 Aye는 쇼윈도 밖을 향해 눈을 뜨고 있다. 매장에 들어오기 전에는 내가 공간을 바라보지만, 안으로 들어오면 어느 순간 내가 그 시선 안에 들어와 있다.

MLMA가 얼굴과 몸을 작업의 매체로 써 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장치는 꽤 정확하다. 상품을 보기 위해 들어온 사람이 계속 거울, 눈, 얼굴, 카메라를 마주한다. ‘I SEE YOU’는 문구가 아니라 동선이 된다.

1층 전경. 무채색의 콘크리트와 금속 사이에서 
우측의 붉은 룸이 작은 면적으로 시선을 잡는다
1층 전경. 무채색의 콘크리트와 금속 사이에서 우측의 붉은 룸이 작은 면적으로 시선을 잡는다
1층 안에서 다시 한 번 반복되는 색의 위계. 
붉은 룸은 이 층의 ‘10% 포인트’처럼 작동한다
1층 안에서 다시 한 번 반복되는 색의 위계. 붉은 룸은 이 층의 ‘10% 포인트’처럼 작동한다

이 두 장면을 나란히 보면 빨강의 사용 방식이 더 선명해진다. 건물 전체를 하나의 옷으로 보면, 노출 콘크리트와 백색이 넓은 바탕을 만들고 붉은 계단실이 작은 면적으로 강하게 끼어든다. 정확한 면적을 실측한 값은 아니지만, 시각적으로는 건물 전체의 ‘10% 포인트’처럼 읽힌다.

그런데 같은 공식을 1층 안에서 다시 반복한다. 1층만 떼어 보면 회색 콘크리트와 금속, 상품이 배경이 되고 우측 구석의 붉은 룸이 다시 그 층의 액센트가 된다. 포인트 색을 건물에 한 번 찍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스케일이 바뀔 때마다 색의 비율을 다시 리셋한 셈이다.

패션에서 슈트의 대부분은 베이스 컬러로 두고 넥타이·행커치프·양말·시계처럼 작은 면적에 강한 색을 얹듯, 공간도 70-20-10에 가까운 위계를 만들 수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숫자 자체가 아니다.누가 배경이고, 누가 시선을 가져갈지를 먼저 정하는 일이다. 그래서 이 매장은 빨강을 꽤 강하게 쓰는데도 어수선하지 않다.

포인트는 색의 양이 아니라,

시선을 가져갈 권한의 배분이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붉은 계단실.
 매장과 매장 사이가 아니라 장면과 장면 사이의 인터미션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붉은 계단실. 매장과 매장 사이가 아니라 장면과 장면 사이의 인터미션

그 위계가 가장 크게 확장되는 곳이 계단실이다. 1층의 작은 붉은 룸에서 한 번 찍힌 색이 수직 동선에서는 벽·바닥·천장까지 번지며 장면 전체를 바꾼다. 같은 빨강인데 역할의 크기가 달라진다.

그래서계단실의 빨강은 장식이라기보다 길 찾기의 신호이자 다음 장면을 예고하는 색이 된다. 1층에서는 포인트였던 색이, 계단에 들어서는 순간 잠시 배경 전체를 점유한다.

강한 색은 넓게 쓰면 배경이 되고,

필요한 곳에만 쓰면 사건이 된다.


04 붉은 계단

이동 공간을 ‘인터미션’으로 바꾼다

붉은 시크릿 챔버.
 유니콘과 여러 개의 거울이 작은 공간을 끝없이 늘린다
붉은 시크릿 챔버. 유니콘과 여러 개의 거울이 작은 공간을 끝없이 늘린다

계단실은 판매 면적이 아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매장에서 가장 먼저 비용이 줄어드는 곳이기도 하다.

여기서는 반대다. 붉은 계단과 계단참의 작은 챔버에 유니콘, 거울, 회화가 숨어 있다. 층을 바꾸는 몇 초가 다음 장면을 기다리는 시간이 된다. SKYnoa도 이 붉은 계단을 극장의 ‘인터미션’처럼 설명한다.

이 선택은 상업적으로도 영리하다.1층에서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고, 계단을 콘텐츠로 만들어 상층으로 올라갈 이유를 만든다. 수직 동선이 약점이 아니라 체험의 순서가 된다.


05 2층 WARDROBE

벽을 세웠는데,

공간은 좁아지지 않는다

KAIROS DESIGN project visualization

2층에 들어서자 공기가 달라진다. 1층의 차갑고 단단한 금속 대신 붉은 가는 프레임과 반투명 막이 반복된다.

처음 현장에서 “한지나 모시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했는데, 설계 자료를 보니 방향은 더 분명했다. 2층의 워크인 클로짓은 전통 한복 원단의 가벼움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천장까지 이어진 반투명 소재. 
기존 조명을 가리지 않고 빛을 한 번 걸러 부드럽게 떨어뜨린다
천장까지 이어진 반투명 소재. 기존 조명을 가리지 않고 빛을 한 번 걸러 부드럽게 떨어뜨린다

재료의 정확한 사양은 공개 자료만으로 특정하기 어렵다. 다만 사진에서 보이는 섬유질의 반투명 면은 빛을 막지 않고 한 번 확산시킨다. 기존 선형 조명과 스폿의 빛이 그대로 통과하면서도 직사광의 날을 죽여, 천장과 벽이 하나의 큰 발광면처럼 느껴진다.

2층 전경 
 벽을 세웠지만 공간은 막히지 않는다
2층 전경 벽을 세웠지만 공간은 막히지 않는다

더 중요한 건 투과성이다.프레임은 공간을 나누지만 시선을 끊지 않는다.앞의 프레임, 그 뒤의 옷, 더 뒤의 사람과 빛이 겹치며 작은 장면들이 연속된다.

카운터 앞 매듭형 설치. 
오브제이면서 동시에 시선의 한 겹이 된다
카운터 앞 매듭형 설치. 오브제이면서 동시에 시선의 한 겹이 된다

카운터 쪽에서 보이는 매듭형 설치 역시 마찬가지다. 노리개를 떠올리게 하는 형태지만, 오브제로 혼자 서기보다 계산대 앞에 한 겹을 더한다. 이 매장에서 구조물은 대체로“막는 물체”가 아니라 “사이에 놓이는 물체”다.

이 매장의 진짜 오브제는 조형물이 아니라,

조형물 사이에 남겨둔 시선의 길이었다.


06 3층 STAGE

피팅룸을 구석이 아니라 중심에 둔 이유

3층 Stage로 들어가는 장면. 
붉은 계단실에서 밝은 매장으로
 색의 밀도가 단번에 바뀐다
3층 Stage로 들어가는 장면. 붉은 계단실에서 밝은 매장으로 색의 밀도가 단번에 바뀐다

3 층에 도착하면 색은 다시 밝아지고, 상품과 사람의 거리가 가까워진다. 공식 설명에서도 3층의 핵심은 ‘개인화’다. 중앙 피팅룸을 층의 심장으로 두고, 주변을 하나의 런웨이처럼 구성했다.

3층 중앙 피팅 존. 
붉은 러그와 거울이 길을 만들고 시선을 되돌려 보낸다
3층 중앙 피팅 존. 붉은 러그와 거울이 길을 만들고 시선을 되돌려 보낸다

보통 피팅룸은 매장 가장 안쪽, 남는 벽면에 밀린다. 판매 공간을 최대한 확보하려는 전형적인 레이아웃이다. 이곳은 반대로 옷을 입어보는 행위를 중앙에 놓는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입어보고 싶으면 저 안쪽으로 들어가세요”가 아니라 “여기에서 마음껏 바꿔 입어보세요”라고 말하는 공간이다. 혼자 온 손님도 덜 눈치 보이고, 선택-피팅-거울 확인의 흐름이 끊기지 않는다.

피팅룸 내부. 바닥과 벽을 감싼 녹색 카펫이 
외부의 시각·청각 자극을 낮춘다
피팅룸 내부. 바닥과 벽을 감싼 녹색 카펫이 
외부의 시각·청각 자극을 낮춘다
피팅룸 내부. 바닥과 벽을 감싼 녹색 카펫이 외부의 시각·청각 자극을 낮춘다

피팅룸 안은 또 다른 밀도다. 바닥에서 벽까지 이어지는 녹색 카펫은 시각적으로 작은 방을 하나의 부드러운 껍질처럼 만든다.

음향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카펫이 문 충격음을 없애는 장치는 아니지만, 작은 피팅룸 안에서 튀는 중·고역의 반사와 발소리의 날카로움을 줄이는 데 유리하다. 주변의 말소리와 발소리가 덜 또렷하게 꽂히면, 사람은 ‘누가 밖에 서 있나’보다 거울 속 자기 모습에 집중하기 쉽다.

피팅룸의 좋은 음향은

음악을 더 크게 들려주는 일이 아니다.

사람이 덜 의식되게 만드는 일에 가깝다.

MLMA의 Kooru와 대형 디지털 스크린. 
3층은 상품보다 자기 표현의 무대에 가깝다
MLMA의 Kooru와 대형 디지털 스크린. 3층은 상품보다 자기 표현의 무대에 가깝다

Kooru와 대형 스크린, 붉은 러그, 거울은 이 층을 실제 무대처럼 만든다. 옷을 입어보는 행위가 매장의 끝이 아니라 콘텐츠가 된다.


07 한지처럼 빛나는 벽

조명기구를 숨기고,

면을 빛나게 한다

빛을 품은 반투명 패널. 
한지처럼 섬유 결이 보여 벽 자체가 조명이 된다
빛을 품은 반투명 패널. 한지처럼 섬유 결이 보여 벽 자체가 조명이 된다

3층에서 계속 눈에 들어온 것은 조명기구보다 빛을 받은 면이었다. 섬유 결이 보이는 반투명 패널 뒤에서 빛이 퍼지며, 벽 자체가 밝아진다.

이런 방식은조명을 ‘점’으로 보여주지 않고 면으로 바꾼다.상품의 실루엣 뒤에 밝은 배경이 생겨 옷의 윤곽이 또렷해지고, 깊은 매장 안쪽도 어둡게 꺼지지 않는다.

붉은 프레임이 그 밝은 면을 잘게 나누면서 2층에서 시작된 레이어의 문법도 3층까지 이어진다. 재료는 달라져도 규칙은 같다.


08 BOSE 음향

좋은 매장 음악은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게 들린다

매장 곳곳에 설치된 
BOSE Professional 벽부형 스피커
매장 곳곳에 설치된 BOSE Professional 벽부형 스피커

매장을 걷다 보니 BOSE Professional 스피커가 반복해서 눈에 들어왔다. 사진의 그릴 형상과 상·하단 엔드캡을 Bose Professional 자료와 대조하면 FreeSpace DS 40SE 계열과 외형이 매우 가깝다.

DS 40SE는 상업공간의 배경·전경 음악을 위해 설계된 4.5인치 풀레인지 벽부형 스피커로, 넓은 커버리지를 갖는다. 이런 시스템의 목적은 한 대를 크게 울리는 것이 아니라 여러 지점에서 음압을 고르게 만드는 데 있다.

사진만으로는 별도의 서브우퍼 모델을 특정할 수 없었다. 저역이 충분히 느껴졌다면 보이지 않는 위치에 별도 저역 시스템이 있거나, 스피커 배치와 EQ·DSP 튜닝으로 밸런스를 만든 가능성까지 열어두는 편이 정확하다.

저도 삼성물산에서 매장을 설계할 때 BOSE의 매장 전문 설계팀과 함께 음향을 잡아본 적이 다수 있다. 그때 확실히 배운 것이 하나 있다.

매장 음향은 좋은 스피커를 고르는 일이 아니라,

사람이 어디를 걸어도

비슷한 음악을 듣게 만드는 설계다.

스피커의 설치 높이, 간격, 각도, 구역별 음압, 앰프 헤드룸, EQ를 함께 맞춘다. 천장이 높고 노출 콘크리트처럼 반사가 많은 공간이라면 더 그렇다. 어느 지점은 시끄럽고 어느 지점은 비어버리면 음악이 브랜드의 배경이 아니라 방해물이 된다.

이 매장은 시각적으로 레이어를 쌓았지만, 음향은 반대로 존재감을 분산시킨다. 눈에는 여러 장면이 겹치고, 귀에는

하나의 분위기가 이어진다. 공간 경험은 그렇게 완성된다.


09 MLMA

작품을 놓은 것이 아니라,

매장 안에 질문을 흩뿌렸다

Free Advice 
돈을 지불하지 않아도 가져갈 수 있는 한마디를 매장 안에 놓았다
Free Advice 돈을 지불하지 않아도 가져갈 수 있는 한마디를 매장 안에 놓았다

MLMA는 패션 디자이너로 일한 뒤 자신의 얼굴과 몸, 디지털 이미지, 음악과 설치를 오가며 작업해 온 아티스트다. 그래서 이 협업은 ‘작품 몇 점을 전시한 패션 매장’보다 경계가 흐리다.

Free Advice의 문장처럼 돈을 지불하지 않아도 가져갈 수 있는 것이 매장 안에 있고, Aye는 계속 우리를 바라보고, Kooru는 상품 옆에 앉아 있다. 구매와 감상 사이가 애매해진다.

그 애매함이 오히려 좋다. 요즘 성수에서 브랜드가 예술을 부르는 이유가 사진 한 장을 얻기 위해서라면 금세 티가 난다. 여기서는 기본 건축의 ‘무대’ 개념과 MLMA의 시선·자기표현이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


10 마지막 문

좋은 콘셉트는

출구에서 풀리지 않는다

& 기호를 연상시키는 곡선 출입문.
 입구와 출구가 같은 문장으로 닫힌다
& 기호를 연상시키는 곡선 출입문.
 입구와 출구가 같은 문장으로 닫힌다
& 기호를 연상시키는 곡선 출입문. 입구와 출구가 같은 문장으로 닫힌다

마지막에 다시 빨간 계단실로 내려왔다. 문 앞에서 손이 멈췄다. 출입문의 곡선은 H&M의 앰퍼샌드(&)를 떠올리게 만든다. 기본 설계에서도 이 문은 브랜드의 새로운 장을 상징하는 장치로 설명된다.

문을 밀고 밖으로 나가자 맞은편 벽돌 건물과 전선, 지나가는 차가 다시 보였다. 조금 전까지 거울과 천과 눈과 금속 사이를 걷고 있었는데, 한 걸음 만에 성수의 거리로 돌아왔다.

그제야 이 매장이 왜 인상 깊었는지 알 것 같았다.

공간을 꽉 채운 것은 큰 조형물이 아니었다.

다음 장면을 미리 조금씩 보여준 레이어였다.

1층은 도착하는 곳이었고, 2층은 고르는 곳이었고, 3층은 입어보고 자신을 보는 곳이었다. 그리고 다시 & 모양의 문을 지나 거리로 나왔다.

옷을 샀는지는 오래 기억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어느 장면에서 잠시 멈췄는지는, 이상하게 오래 남는다.

KAIROS DESIGN · 공간 메모

이 공간에서 특히 좋았던 것은“무엇을 더 넣었는가”보다 “어디까지 가리고 어디까지 보여주었는가”였다. 대형 설치물은 레이어가 되고, 빨강은 건물과 각 층에서 서로 다른 비율의 포인트가 되며, 조명·음향·피팅룸은 사람의 움직임을 조용히 받친다.요소가 따로 노는 순간 장식이 되지만, 시선과 동선 안에서 얼라인되면 브랜드 경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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