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AL

DIPTYQUE GAROSU-GIL

SCENT BEFORE SIGHT

GAROSU

/

2026

향은 눈에 보이지 않는데,

이곳에서는 그 향과 함께 살아갈 하루가 먼저

보였습니다.


식탁 위에 켜진 촛불,

손을 씻고 난 뒤의 향,

창을 열어둔 오후.

딥티크 가로수길은 향수와 캔들을 파는 매장입니다.

그런데 제품보다

그 향이 머물 장면을 먼저 꺼내 놓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살지만 고르지 않습니다.

어디에 두고,

누구와 어떤 시간을 보낼지까지

함께 고르게 됩니다.


4m 높이의 문과 황동 장식.

상품보다 먼저 딥티크의 세계를 보여줍니다.


01 · ENTRANCE

거리의 속도를

잠시 멈추게 하는 문

2022년 문을 연 이곳은 260㎡, 약 78평 규모의 국내 첫 딥티크 플래그십입니다. 4m 높이의 문과 거대한 캔들 오브제 앞에 서면, 가로수길의 빠른 걸음도 잠깐 느려집니다.

문은 크지만 첫인사는 바닥의 작은 모자이크입니다.

큰 문이 낯선 세계를 열고, 작은 글자가 ‘서울에 온 딥티크’를 조용히 알려줍니다.

DIPTYQUE À SEOUL.

매장명보다 짧은 환영 문장처럼 읽힙니다.


02 · THE HOUSE

집처럼 꾸민 이유는

처음으로 돌아가기 위해

딥티크는 1961년 파리 생제르맹에서 패브릭과 여행 오브제를 팔던 작은 가게로 시작했습니다. 향수보다 세 창립자의 취향과 생활 방식이 먼저였습니다.

그래서 이곳의 ‘집’은 그럴듯하게 만든 세트가 아닙니다. 1층의 응접실과 작업실, 2층의 식탁과 주방, 욕실을 걷다 보면 딥티크가 시작된 자리로 돌아온 듯합니다.

향을 진열하는 대신, 향이 생활 속에 들어가는 순간을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1층 전경. 중앙 테이블, 스틸 미러,

회전형 계단과 벽 드로잉이 한 프레임 안에서 연결됩니다.


“마음껏 만져보고 사용해보세요.”

매장에서 들은 가장 좋은 안내


높은 문과 작품들 앞에서 잠시 조심스러워졌던 마음이 이 한마디에 풀렸습니다. 그때부터 이곳은 구경하는 매장이 아니라, 잠시 초대받은 집처럼 느껴졌습니다.

작업실처럼 보이는 1층의 월넛 데스크. 향수는 상품군이 아니라 수집품처럼 놓였습니다.


03 · TWO WAYS TO SEE

놀라움에도

서로 다른 방향이 있습니다

탬버린즈와 젠틀몬스터가 작품의 크기로 카메라를 멈추게 한다면, 딥티크는 재료에 남은 흔적으로 손을 멈추게 합니다.

한쪽은 “매장에 이런 걸?”이라고 묻게 하고, 다른 한쪽은 “이건 누가 만들었을까?”를 궁금하게 합니다. 하나는 한눈에 압도하고, 다른 하나는 가까이 볼수록 이야기가 생깁니다.

어느 쪽이 더 낫다기보다, 향을 천천히 비교해야 하는 딥티크에는 두 번째 놀라움이 잘 어울립니다.

가까이 다가가야 제품과 배경의 선,

용기의 촉감을 함께 읽을 수 있습니다.


04 · THE TABLE

먼저 남은 손자국 위에

다른 손이 올라갑니다

1층 중앙의 붉은 테라코타 테이블은 미국 작가 크리스 울스턴 Chris Wolston의 작업입니다. 옆면의 손가락 자국은 콜롬비아 벽돌 장인들이 젖은 흙을 다듬을 때 남기는 흔적에서 시작됐습니다.

그 손자국 위에 고객의 손이 다시 놓입니다. 작품은 멀리서 보는 대상이 아니라, 향을 고르는 자리가 됩니다.

‘만져보라’는 작가의 뜻과 ‘마음껏 사용해보라’는 매장의 태도가 한 표면에서 만납니다.

Chris Wolston의 테라코타 테이블.

작가의 손과 고객의 손이 같은 표면에서 만납니다.


05 · THE MIRROR

거울 앞에서

공간의 일부가 됩니다

계단 앞 조약돌 같은 거울은 폴란드 디자이너 오스카 지에타 Oskar Zięta의 O 시리즈입니다. 두 장의 강판을 붙인 뒤 공기를 불어넣어 부풀리는 FiDU 방식으로 만들어 가장자리가 물방울처럼 매끈합니다.

보통 계단 아래는 남기 쉬운 자리입니다. 이곳에서는 거울이 출입구와 테이블, 그 앞에 선 사람까지 한 화면에 담습니다.

내 얼굴을 보려고 선 순간, 방금 지나온 공간까지 거울 안에 들어옵니다. 사람도 자연스럽게 이 매장의 한 장면이 됩니다.

오스카 지에타의 O 시리즈 미러.

반사된 사람과 테이블, 출입구가 작품의 일부가 됩니다.


06 · THE STAIR

보이지 않는 향에

올라가는 방향을 그리다

벽과 계단, 천장까지 이어지는 검은 선은 국내 뮤럴 아티스트 바울 Rock and Wilderness입니다. 딥티크 공동 창립자이자 화가였던 데스몬드 녹스-리트 의 드로잉을 서울 매장의 벽과 계단에 맞게 이어 그렸습니다.

공식 제목은 ‘바위와 황야’지만, 이곳에서는 향이 공기 중에 퍼지는 모습처럼도 보입니다. 더 좋은 점은 선이 벽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곡선 계단을 감아 2층까지 올라가니 안내 문구를 읽지 않아도 시선과 발이 선을 따라갑니다. 작품이 길 안내를 대신합니다.

Baul, Rock and Wilderness.

선은 벽에 머물지 않고 계단과 천장으로 이어집니다.

계단의 곡률과 손스침,

드로잉의 방향이 이동을 하나의 장면으로 만듭니다.

MY SI MEMORY

이 계단을 보니 이랜드 인테리어팀 시절 진행했던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프로젝트가 떠올랐습니다. 명동·강남·홍대의 매장에서 하루 종일 입점객과 2층 이동객을 세며 계단의 위치와 폭, 첫 단의 노출, 위층이 보이는 정도를 비교했습니다.

숫자를 세며 배운 것은 하나였습니다.

사람은 계단이 멋져서가 아니라,

위에 있는 다음 장면이 궁금할 때 올라갑니다.

KAIROS SI NOTE · VERTICAL CONVERSION

멋진 계단보다

올라갈 이유

딥티크는 입구에서 보이는 곡선 계단과 위층의 빛,

계속 이어지는 드로잉을 한 장면으로 묶었습니다.

2층이 또 하나의 판매층이 아니라

아직 보지 못한 다음 장면처럼 보입니다.


07 · SECOND FLOOR

사람은 없는데

생활의 기척이 있습니다

2층에는 긴 식탁과 벽난로, 주방과 욕실이 이어집니다. 실제로 사는 사람은 없는데, 누군가 잠시 자리를 비운 집처럼 보입니다.

아직 저녁이 오지 않은 식탁에는 향초가 놓여 있고, 욕실에는 손을 씻고 난 뒤의 향이 기다립니다. 제품이 진열된 것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생활을 기다리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향을 살까?”보다 “우리 집 어디에 둘까?”가 먼저 떠오릅니다.

멋진 계단보다

2층 벽장. 재고를 쌓는 선반보다

오래된 집의 수납가구처럼 설계했습니다.


08 · LIGHT

좋은 조명은

자신보다 방을 먼저 보여줍니다

2층 긴 테이블 위에는 프랑스 디자이너 세르주 무이 Serge Mouille의 Three-Arm Ceiling Lamp가 있습니다. 1958년에 디자인된 조명으로, 가는 팔과 세 개의 비대칭 갓이 방향을 바꾸며 넓은 테이블을 비춥니다.

국내에서는 천만 원 안팎에 판매되는 고가의 조명이지만, 이곳에서는 가격보다 선이 먼저 보입니다. 1층 벽의 드로잉이 2층 천장에서 빛의 선으로 이어진 듯 방의 분위기만 바꿉니다.

고급스러움은 비싼 것을 크게 보여주는 일이 아니라, 좋은 물건이 공간을 방해하지 않고 제 역할을 하게 두는 데서 생깁니다.

Serge Mouille, Three-Arm Ceiling Lamp.

조명의 선이 공간 전체의 드로잉 언어를 이어받습니다.

긴 식탁에서는 향을 사이에 두고 천천히 비교할 수 있습니다. 큰 창과 열린 난간 덕분에 2층도 별도 매장보다 같은 집의 위층처럼 느껴집니다.

창밖에는 가로수길의 나무와 사람들이 보입니다. 이 풍경이 들어오며 파리 저택을 닮은 실내가 서울의 현재와 연결됩니다.

오래된 집을 그대로 재현했다면 아름다운 세트로 끝났을지 모릅니다. 살아 있는 거리와 이어지니 비로소 ‘서울의 딥티크’가 됩니다.

거리의 풍경까지 집 안의 한 장면으로 끌어들인 창.


09 ·

향의 설명 대신

향이 쓰일 자리를 보여줍니다

2층 주방은 파리의 니심 드 카몽도 미술관 주방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흰 타일과 구리 냄비, 대리석 상판이 오래된 프랑스 집의 생활감을 만듭니다.

구리 냄비 옆의 캔들은 판매 제품보다 저녁을 준비하는 물건처럼 보입니다. 향의 원료를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식사가 끝난 뒤 켜두고 싶은 장면이 먼저 떠오릅니다.

구리와 대리석, 타일의 물성이 향의 배경이 됩니다.

벽난로와 앤티크 거울 옆에는 현대적인 오브제가 놓였습니다. 실제 집은 한 시기의 물건으로만 채워지지 않습니다.

오래된 것과 새로 고른 것이 함께 있으니, 재현된 저택보다 시간이 쌓인 집에 가까워집니다.


10 · SI IDEA

2층으로 올라가게 하는

가장 작은 초대장


11 · SERVICE

공간을 완성한 것은

들어와도 된다는 한마디

높은 문과 유명한 작품, 고가의 조명은 아름답지만 사람을 잠시 조심스럽게 만들기도 합니다. 매니저님은 향을 뿌리고, 로션을 바르고, 테이블도 직접 만져보라고 먼저 권했습니다.

그 안내 덕분에 프랑스 저택처럼 보이던 공간은 구경하는 집에서 초대받은 집으로 바뀌었습니다.

인테리어가 장면을 만들었다면, 사람은 그 장면 안에 내가 들어가도 된다는 마음을 건넸습니다.

캔들의 열로 천천히 도는 작은 장식.

거대한 설치물 대신 가까이 다가가야 발견되는 움직임입니다.


EPILOGUE

나올 때 떠오른 것은

향의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그 향을 놓아둘 내 집의 한 장면이었습니다. 식탁 위의 촛불, 물기가 마른 뒤의 비누 향, 창을 열어둔 오후가 함께 떠올랐습니다.

딥티크는 향을 팝니다. 다만 향수병만 보여주지 않고, 그 향이 들어갈 자리를 고객의 생활 안에 먼저 만들어줍니다.

향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좋은 공간은 보이지 않는 향과 함께 살아갈 시간을 눈앞에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고르게 되는 것은 향 하나가 아니라,

그 향이 들어올 나의 다음 장면입니다.

KAIROS DESIGN — SEOUL

© 2026 KAIROS DESIG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