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감각을 걷다
카페 드 우영미에서 리움까지
10월 17일, 일행과 함께
우영미 카페와 리움을 둘러보고
남산 길을 걸어 신흥시장까지 갔다.
높은 천장과 금빛 조각도 기억에 남지만,
돌아와 자꾸 생각난 것은
지나칠 뻔했던 작은 나무 사진이었다.
무엇을 보았는지보다
무엇을 지나치지 않았는지가
오래 남는 날이 있다.
벽에 달린 작은 단추들
스위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스토커 리 아르키테티가 설계한 우영미.
높은 천장 아래, 벽에 모인 작은 원들이
남성복 소매의 단추처럼
공조용으로 보이는 구멍까지
브랜드의 표정이 되는 듯했다.
벽의 위아래를 비운 자리로는
서로 다른 층의 사람이 함께 보였다.
몸은 한 층에 있는데,
눈은 벌써 다음 층에 가 있었다.
낮의 벽에서 밤을 상상하다
낮에는 바깥이 더 보였으면 싶었다.
그러다 디제잉 장비와 붉은 커튼을 보고
밤의 모습을 상상했다.
유리블록에 실내의 빛이 번지고,
커튼이 사람들 뒤로 깊은 배경이 되면
닫혀 보이던 벽도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주택가라는 자리까지 생각하니,
이곳은 전망만큼 안에 있는 사람의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는 듯했다.
옥상에 올라서야 하늘이 시원하게 열렸다.
연약한 것이 붙잡고 있는 무게
리움에서 본 구정아의 강세 S 앞에서
일행과 가장 오래 이야기를 나눴다.
발뒤꿈치와 머리카락이 몸을 받치고 있었다.
가장 가늘어 보이는 곳에 눈이 멈췄다.
문득 귀여운 것이 강하다는 말이 떠올랐다.
귀여운 것을 보면 마음이 풀리고,
조금 더 너그러워지니까.
구마 겐고의 약한 건축도 생각났다.
얇은 커튼으로 경계를 만드는 그의 작업처럼,
부드러운 것도 사람을 감쌀 수 있다.
함께한 사람들의 말을 듣고 조각을 다시 보았다.
혼자였다면 끝났을 감상이
다른 사람의 시선을 따라 길어졌다.
사진 밖으로 자라는 나무
작은 나무 사진 하나를 지나쳤다가
몇 걸음 뒤로 돌아갔다.
줄기에서 가지가 갈라지는 부분만 담겨 있었다.
왜 이 부분만 보여주었을까.
위로 이어질 가지와 잎,
땅속에 퍼져 있을 뿌리를 상상했다.
가지가 다시 잔가지로 나뉘는 모습에서
작은 갈래가 반복되는 프랙탈을 떠올렸다.
사진 밖으로 이어질 나무는
보는 사람에게 맡겨둔 것 같았다.
사진 밖으로 나무가 자라는 동안,
나는 그 앞에 조금 더 서 있었다.
아름다운 시선을 지키는 데도
의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다고 넘기지 않고,
잘 모르겠다고 지나치지 않는 일.
책의 낯선 문장으로 돌아가 읽고,
러닝에서 내 호흡을 살피며 조금 더 달리듯,
보는 일에도 꾸준한 연습이 필요한 것 같다.
그날 내게 필요했던 것은
대단한 지식보다 되돌아갈 몇 걸음이었다.
전시장 밖에서도 이어진 이야기
남포한남에서 저녁을 먹으며
전시에서 시작된 이야기를 이어갔다.
함께 웃고 이야기하는 사이,
식사 시간도 즐겁게 흘렀다.
이날 저녁은 띠어리님이 대접해 주셨다.
함께한 시간을 더 따뜻하게 만들어주신
마음에 감사드린다.
남산 길을 걷고 신흥시장에서
와인 한 잔으로 하루를 마쳤다.
함께 전시를 보면 내 기억에도
처음에는 없던 장면이 생긴다.
혼자라면 지나쳤을 곳에
다른 사람의 말이 나를 잠깐 붙잡아준다.
와인잔을 든 사진에는 여러 손이 모여 있다.
사진으로는 들리지 않지만,
그 사이에는 우리가 나눈 말들이 남아 있다.
작은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된 나무는
그날 저녁까지 가지를 뻗고 있었다.
리큐르숍 가지
리큐르 숍 가지는 구정아 전시에서 본
작은 나무 사진에서 시작했다.
줄기에서 가지가 갈라지던 모습을
입구와 천장을 잇는 목재 구조로 옮겨보았다.
리큐르숍을 떠올린 것은
그날 와인 한 잔을 두고 나눈 대화 때문이었다.
한 병을 고르는 일도 서로의 취향을
알아가는 시작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