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AL

K-ROUTE BUKCHON

Where Time Accumulates

SEOUL

/

2026

공간 관찰·해석 | KAIROS 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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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오설록에서 푸투라 서울까지

시간이 쌓이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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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설록 테라스에 앉아 기와지붕을 바라보았다.

내가 앉은 곳은 양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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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수의 한옥 곁에서는 새 공간을 더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오래된 지붕과 근대의 창, 아직 완성되지 않은 건물이 한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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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보러 온 줄 알았는데,

그 안에서 지금도 미래를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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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오래되었다고 부르는 집도

누군가에게는 처음 맞는 미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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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곁의 양옥도, 옛집 곁의 공사도 한 가지 뜻으로 읽히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익숙한 풍경이고, 누군가에게는 변화의 시작이다. 같은 자리 위에 서로 다른 시간이 겹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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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쳐진 시간을 따라 푸투라 서울로 걸었다.

그곳에서는 세 번째 시가 쌓이고 있었다.

오설록 → 푸투라 서울 → 돌담길 → 한옥청 → 북촌도담


01 오래된 미래라는 이름

노출콘크리트와 빛을 머금은 유리. 북촌의 시간 위에 놓인 또 하나의 표정.

푸투라는 내가 좋아하는 글씨체다.

1927년 파울 레너가 선보인, 원과 직선의 질서가 또렷한 서체. 장식을 덜어낸 글자만큼 글자 사이의 간격이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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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미래를 뜻한다. 거의 백 년 전의 글씨가 여전히 미래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조금 전 보았던 양옥처럼, 새로움도 시간이 지나면 한 시대의 기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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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처’였다면 알아듣고 지나쳤을 말.

‘푸투라’여서 한 번 더 들여다보았다.

그 작은 수고만큼 이름에 내 시간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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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유리에는 노랑과 초록이 겹쳤다. 보는 각도에 따라 색이 달라지는 다이크로익 필름을 떠올리게 한다. 빛의 일부는 통과시키고 일부는 반사해, 한 표면에서도 서로 다른 색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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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은 WGNB 백종환과 퍼스펙티브스 건축사사무소 김원방이 함께 설계했다. 총괄과 공간 설계는 WGNB가 맡았다. 출발점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공간 안에서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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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건물 뒤에는 약 50년의 시간을 품은 정원이 남아 있다. 기존 나무와 돌을 받아들인 건축. 이곳의 미래는 오래된 시간을 지우지 않는 데서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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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 데블린은 이곳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미래는 현재 안에 구현되어 있습니다.”


02 세 번째 시와 그 사이의 여백

책들이 쌓인 벽 위로 빛과 생명의 형상이 겹친다.

에스 데블린의 ‘다시 집으로’는 푸투라 서울의 세 번째 시다. 이곳은 전시 한 편을 시 한 편으로 삼아 ‘백 개의 시’를 쌓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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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라는 말에는 이미 지나온 두 편이 들어 있다.

아직 만나지 않은 다음 편의 자리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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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서 행을 바꾸는 것은 말을 끝내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방금 읽은 문장이 가라앉고, 다음 문장을 조금 다르게 맞이할 시간. 행간은 그렇게 떨어진 말들을 마음속에서 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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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간은 비어 있지만,

읽는 사람의 시간으로 채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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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팀은 건물을 두 흐름으로 구성했다. 한쪽은 로비와 후원, 전시실과 중정, 테라스로 잘게 이어지고, 다른 쪽은 높이 10.8m의 큰 전시실로 열린다. 나는 이 크기의 차이를 시의 호흡처럼 읽었다. 작은 장면을 건너다 큰 공간에 서면, 같은 몸으로 전혀 다른 깊이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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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다시 읽으면 전에 없던 뜻이 보이듯, 공간도 한 번의 시선으로 다 읽히지 않는다. 먼저 본 장면에 다음 경험이 겹치면 해석도 달라진다. 쌓인다는 것은, 한 풍경에서 읽을 수 있는 의미가 깊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03 길을 잃으며 나를 다시 보는 방

도서관의 책들은 종이의 단면을 내보였다. 오래전에 쓰인 문장이 오늘의 나를 만나고, 그 문장을 읽은 나는 내일 조금 달라진다. 책장 사이로 열린 문을 지나자 거울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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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는 길을 찾게 하고, 길을 잃게도 한다.

거울은 나를 보여주지만, 반사 속에 나를 흩어놓기도 한다.

빛은 방향을 알려주다가, 비친 길을 실제 길처럼 보이게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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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빛에 눈을 빼앗기면 발밑의 감촉과 곁의 소리는 뒤로 밀려나기 쉽다. 잘 보인다고, 공간을 온전히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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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비추는 것이

언제나 나를 더 잘 알게 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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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블린은 지금 이곳에 있다는 감각을 몸 전체에서 찾는다. 발바닥과 손끝까지 감각하는 일. 거울 앞에서 필요한 것도 내 모습을 더 보는 일만은 아니었다.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누구와 함께 있는지 돌아보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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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빛 안에 안내와 혼란이, 같은 거울 안에 발견과 왜곡이 포개졌다. 어느 하나를 지워야 이해되는 방이 아니었다. 한 번 더 움직일 때마다 앞서 본 장면의 뜻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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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슐라르는 ‘공간의 시학’에서 집을 몽상을 지켜주는 곳으로 바라본다. 이 방에서 ‘다시 집으로’는 나를 둘러싼 이미지들 사이에서, 내 감각이 머물 자리를 찾는 말처럼 들렸다.


04 백종환과 설계팀이 열어둔 시간

후원의 나무와 계단 너머의 빛. 건축은 바깥의 시간을 안으로 받아들인다.

거울 방을 나오면 빛의 역할도 달라진다. 작품 안에서 시선을 흔들던 빛이, 창과 중정에서는 지금의 날씨와 시간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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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GNB는 1층 후원을 자연과 연결되는 자리로, 2층의 낮고 긴 24m 창을 북촌의 현재를 들이는 자리로 설명한다. 같은 건물 안에서도 창의 높이와 방향에 따라 우리가 만나는 세계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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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정은 한옥의 안마당을 다시 해석한 공간이다. 세 면의 높은 벽은 시선을 가두지만, 열린 하늘은 그 안으로 빛을 보낸다. 둘러싸인 곳에서 오히려 시간의 움직임이 또렷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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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은 풍경을 덜어내고,

그 자리에 시간의 움직임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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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근의 공간사옥에서 스킵플로어를 통해 한옥의 높낮이를 읽듯, 푸투라에서는 중정과 자연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한옥의 감각을 읽는다. 마당에서 디딤돌과 툇마루, 대청으로 오르고, 누마루와 다락에서 눈높이가 달라지던 경험. 전통은 모양과 함께 몸의 기억으로도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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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춤토르가 ‘건축을 생각하다’에서 떠올린 어린 시절의 문손잡이와 부엌의 빛도 그런 기억이다. 새 공간을 느끼는 몸에는 이미 지나온 공간들이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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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팀이 마련한 틈으로 오래된 정원과 오늘의 북촌, 아직 오지 않은 계절이 들어온다. 데블린은 이 건축을 산과 역사, 자연과 태양이 함께 추는 춤으로 보았고, 자신도 그 춤에 참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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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건축이 먼저 남겨둔 행간에

작품과 우리의 시간이 한 줄씩 더해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05 돌담의 틈과 한옥청의 창

돌과 벽돌, 줄눈과 기와. 다른 문장들이 이어지는 담장.

한옥청으로 가는 길, 담은 안과 밖을 나누면서 우리가 걸을 길을 이어주었다. 돌 사이의 줄눈은 각각의 돌을 드러내면서 하나의 벽으로 묶었다. 나누는 틈이 연결하는 자리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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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행간도 말을 떼어놓으면서 뜻을 이어준다.

거울 방에서 품은 질문이 돌담 사이에서 다시 읽혔다.

오래된 문틀 안에 기와지붕과 오늘 함께 온 사람들이 겹친다.

한옥청의 유리창은 안을 보여주다가, 빛을 받아 바깥 풍경을 돌려주었다. 같은 창이 투명한 통로도, 거울도 되었다. 오래된 문틀 안에 기와지붕과 오늘의 우리가 겹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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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집을 보러 왔다가

그 집의 오늘에 우리가 조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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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이 창을 보면 기와지붕만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함께 서 있던 사람의 자리도 떠오를 테니까.


06 하루가 다음 기억이 될 때

북촌도담에서 마주 앉았다. 같은 길을 걸은 사람들의 서로 다른 기억.

북촌도담에서 보쌈과 전을 나눴다.

같은 방향으로 걷던 사람들이 서로를 보고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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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블린은 관객을 ‘일시적인 사회’라고 부른다. 함께 있을 때 혼자서는 알 수 없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는 말. 같은 길을 걸어도 누군가는 나무를, 누군가는 창을 오래 보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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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거울 속에서 길을 찾았고, 누군가는 잠시 길을 잃었을 것이다. 서로 다른 감상을 듣는 동안, 내가 본 하루에도 다른 길이 생긴다.

걷던 하루가 머무는 시간으로 바뀌는 자리.

푸투라의 세 번째 시를 나와

돌담길을 걷고, 오래된 창 앞에 서고, 식탁에 둘러앉았다.

장소와 장소 사이의 시간이, 서로 다른 감정까지 한 편 안에 머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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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았던 하루는 지나가고 나서도

앞으로의 나를 조금씩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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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낯선 창 앞에서 오늘의 빛이 떠오를 것이다.

그때 알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공간을 지나오는 동안,

공간도 우리 안에 오래 머물 자리를 만들고 있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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