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URNAL

AESOP KOREA DOSAN

SCENT OPENS THE DOOR

DOSAN

/

2026

공간 관찰·해석 | KAIROS DESIGN

AESOP DOSAN

향이 문보다 먼저 열리는 집

1980년대 가정집의 기억을

향과 행위로 되살린 이솝 도산

이솝 도산은

문을 열기 전부터 시작되었다.

유리문 곁 작은 항아리형 향로에서

가느다란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실내에서 흘러나온 향은 문턱에 머물지 않고,

골목을 지나는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01 향은 보이지 않는 입구가 된다

보통 매장의 입구는

간판과 쇼윈도로 시작된다.

이곳의 첫 경계는 그보다 앞에 있었다.

눈보다 먼저 도착한 향이 방향을 알리고,

문을 열기 전 이미 브랜드의 감각 안으로 들어가게 했다.

향을 장식이 아니라 동선의 장치로 쓴 것이다.

파사드가 눈으로 건네는 초대라면,

향은 기억으로 건네는 초대였다.


02 오피스의 시간을 지우지 않고, 다시 열다

이 건물은 지난 5년간

이솝 코리아의 오피스로 사용되었다.

이제 구성원들이 일하던 건물의 1층이

고객이 머무는 스토어로 바뀌었다.

낯선 장소에 새로 지은 매장이 아니라,

이미 시간이 쌓인 공간의 용도를 바꿔 다시 연 것이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는

새로운 매장을 만드는 일이면서,

기존 장소의 기억을 다른 사람에게 건네는 일이기도 하다.

SPACE NOTE

SPACE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45길 10-6 1층

OPEN 2026년 7월 22일

DESIGN 임태희디자인스튜디오(LTH)

MOTIF 조부모의 집에서 식사하던 기억과 1980년대 한국 가정집의 주방

공간 디자인은 임태희디자인스튜디오(LTH)의

임태희 소장이 맡았다.

그는 공간의 본질을 ‘머무름’으로 보고,

보이는 장면보다 그 안에서 일어날 행위와 시간을 설계해왔다.

이번 공간의 출발점도 형태가 아니라 기억이다.

조부모의 집에서 함께 식사하던 시간,

그리고 1980년대 한국 가정집의 주방.

과거를 그대로 복제하기보다

그 안에 있던 관계와 생활의 감각을 오늘의 매장으로 옮겼다.


03 주방을 닮은 판매 공간

원목 프레임과 회백색 문짝,

비누 한 장을 떠올리게 하는 아이보리 타일,

무늬 유리 수납장이 공간을 채운다.

노출 콘크리트와 천장 배관은 그대로 두고,

손이 닿는 곳에는 원목과 타일을 더했다.

벽면 수납으로 진열 밀도를 낮추고

중앙 세면대를 체험 동선의 중심에 두었다.

오래된 건축의 흔적 위에

이솝의 새로운 쓰임을 겹친 공간이다.


04 기둥을 없애는 대신, 머물 자리를 만들다

한가운데 선 콘크리트 기둥은

보통 매장이라면 동선을 막는 장애물로 읽힌다.

이곳은 기둥을 감싸 평상 같은 좌석을 만들고,

그 앞에 소반을 닮은 낮은 상을 놓았다.

교자상처럼 여러 사람이 둘러앉는 큰 상보다,

한두 사람이 가까이 머무는 소반의 크기에 가깝다.

없앨 수 없는 구조를 감추는 대신

앉고 쉬는 행위로 바꾼 것.

공간 기획의 좋은 해법은 때로

약점을 지우는 일이 아니라 역할을 다시 주는 데서 시작된다.


05 과거를 오늘로 움직이는 작은 장치

벽에는 오래된 숫자 달력이 걸려 있었다.

그런데 달력은 과거의 어느 날에 멈춰 있지 않았다.

내가 방문한 7월 27일,

바로 오늘을 가리키고 있었다.

옛 달력이 장식으로만 걸려 있었다면

그것은 복고풍 소품에 머물렀을 것이다.

날짜를 매일 넘기는 작은 행동이 더해지자

과거의 물건은 현재의 시간을 살기 시작했다.

기억은 오래된 물건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그 물건을 사용하는 행위 속에 남는다.


06 기억은 소품보다 재료 사이에 남는다

무늬 유리 문짝은 안을 모두 드러내지 않으면서

안쪽의 빛과 형태를 희미하게 남긴다.

원목 가구의 붉은 기,

아이보리 타일의 부드러운 광택,

벽을 타고 흐르는 덩굴이

한때 누군가 살았을 법한 집의 생활감을 만든다.

중요한 것은 달력과 벽시계 같은 소품만이 아니다.

손이 닿는 원목,

발끝에서 반복되는 작은 타일,

물건을 반쯤 가려주는 유리처럼

몸이 감지하는 재료의 조합이 기억을 더 오래 붙잡는다.


07 판매보다 먼저, 손을 씻는 장면

이솝의 매장에서 세면대는 설비가 아니라

브랜드 경험의 중심이다.

눈으로 제품을 보고,

향을 맡고,

손으로 직접 사용해보는 과정이

한 자리에서 이어진다.

도산 스토어는 그 장면을

가정집 주방의 싱크와 수납장 안에 넣었다.

제품 설명을 듣는 시간이

누군가의 집에서 손을 씻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처럼 바뀐다.

상업 공간에서 콘셉트가 힘을 갖는 순간은

모양을 닮았을 때가 아니라,

그곳에서 일어나는 행동까지 닮았을 때다.

KAIROS SPACE PROPOSAL · ONE

세 곳 중 한 곳은,

세면대 높이가 조금 달라도 좋았을 것 같다.

가족과 함께 온 아이도

자연스럽게 손을 씻어볼 수 있도록.

매장에는 세면대가 세 곳 있지만 높이는 모두 같다. 그중 한 곳쯤은 조금 낮게 계획하고 아래 공간을 비워두었으면 어땠을까.

아이는 조금 더 편하게 손을 씻을 수 있고, 휠체어를 이용하는 방문자도 세면대 가까이 자연스럽게 들어올 수 있다. 별도의 전용 설비처럼 구분하기보다 기존 재료와 디자인을 그대로 이어가면 된다. 눈에 띄는 변화는 아니지만, 이솝의 경험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는 작은 배려가 될 수 있다.


08 집은 공간보다 늦게 완성된다

1980년대의 집을 닮은 가구와 소품은

집의 형식을 만든다.

그러나 형식만으로

한 채의 집이 완성되지는 않는다.

달력을 오늘로 넘기고,

문 앞에 향을 피우고,

찾아온 사람에게 이 집의 이야기를 기꺼이 건네는 일.


결국 그 공간을 실제 집으로 완성하고 채우는 것은

집주인의 환대와 친절이 아닐까.

좋은 공간은 눈에 남지만,

환대받은 공간은 마음에 남는다.

이솝 도산에서 본 것은

1980년대 집을 재현한 매장만이 아니었다.

과거의 기억을 오늘의 행위로 바꾸고,

향과 손의 경험으로 사람을 잠시 머물게 하는 집이었다.

KAIROS DESIGN —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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